'황혼의 세에베에' 사무라이의 애환에 관한 영화 후기
영화는 막부 말 사무라이들이 자신에 대한 정체성마저 희미해져 갈 무렵 무사로서의 검술이 아주 출중하다고도 볼 수 없고, 그렇다고 처세가 뛰어난 것도 아닌 그저 그런 느낌입니다.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하급무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역사적인 사건들이 주인공의 인생에 영향은 주지만, 그러한 큰 사건들이 영화의 주가 되지는 않기 때문에 혹시나 스케일이 크거나 스펙터클한 전투신을 기대하시는 분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람의 검-신선조'와 같은 인간적인 시각으로 사무라이에 접근한 영화를 기대하신다면 재밌게 보실 수 있을 듯합니다. 실제로도 '바람의 검'과 자꾸 비교하면서 영화를 보게 되는데, 두 영화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설정이 여럿 발견됩니다. (후손의 회상에 의한 진행 / 하급무사의 재정고 / 사랑하는 부양가족들을 위한 결단 / 하급직에도 불구하고 무사로서의 프라이드를 지켜가는 모습 등) 특히 저는 처음에 '황혼의 세에베에'라는 제목을 듣고 뭔가 검술의 경지에 다다른 듯한 고수가 황혼의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멋들어진 심상이 떠올랐습니다만, 알고 보니 '칼퇴근'이라는 사무라이의 로망과는 영 거리가 먼, 깊은 가족 헌신의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기억에 남는 이유
생각할수록 영화의 스토리와 맥이 잘 통하는 제목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황혼'이라는 뜻에서 황혼기에 접어든 그 시대 사무라이들의 쓸쓸한 모습을 담고있것 같기도 하고요. 이 영화는 생각해보면 그다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기 힘들 듯 한 주제를 흡입력 있게 잘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장점 몇 가지를 뽑아보자면 첫째로 현실감 있는 액션씬입니다. 칼싸움 장면이 많지는 않다기에 그다지 기대를 안 해서 어설프게 대충 메꿀 줄 알았던 칼싸움 장면이 매우 세련되게 연출된 것 같습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현실감 있는 액션신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한가로운 농촌의 전원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냈다는 것입니다. 장점이라고 까지 치켜세우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듯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뻐꾸기 울고 개구리 소리 나는 자연의 모습'을 동경하는지라...('릴리 슈슈...'에서의 논두렁 같습니다. 평화로운 풍경이 당시 사무라이들의 지극히 평범한 생활상과 어울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듯합니다. 세 번째는 탄탄한 구성입니다. 제가 영화를 볼 때 특히 신경 쓰며 보는 요소이기도한데, '황혼의 세에베에'는 한마디로, 절제와 치밀한 준비로 균형이 잘 맞는 영화라 하고 싶습니다. 가끔 다른 일본 영화들을 보다 보면 처음에는 잘 이끌어 나다가, 갑자기 장르를 알 수 없게 돼버린다든지, 억지스럽고 오버스러운 대사나, 내용을 질질 끌어 영화의 질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는데, (물론 일본인 고유의 정서와 문화차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지만요.) 이 영화는 사무라이의 사랑, 가족애, 우정, 충절 등 여러 가지 가치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내 균형을 잘 잡아가며 깔끔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위에 열거한 내용들은 순전한 저의 개인적 생각입니다. 감상후기의 성격을 염두하여 보편적이기보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 위주로 적어보았습니다. 감안해 주셨으면 좋겠고요, 다른 분들의 감상도 궁금하네요. 영화의 평이 너무 장점에만 치중되어 써진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며 아쉬웠던 점과 느낀점
아직 영화를 감상하는 시각의 폭이 좁은 관계로 특별히 아쉬운 점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굳이 단점을 언급하자면 일본의 시대극에서 흔히 발견되는 국수주의의 느낌이 조금 배어있는 점을 짚고 싶습니다. 이점이야 각 국가마다 상대적인 기준이 강하니 단점이라 하긴 그렇고, 그렇다고 영화 내에서 노골적으로 이 부분에 대한 묘사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마지막에 늙은 딸이 아련히 회상하는 장면에서 뭔지 모를 일본인들의 사무라이 정신을 향한 미화가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수하다고 생각되는 자국의 문화나 역사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매끄럽게 전달하고자 하는 일본인들의 노력에 대한 부러움 내지 질투심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영화산업이 일본의 그것에 비해 결코 뒤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갖은 외래문화의 범람 속에서 자국의 문화를 여러 방법을 통해 튼튼히 지켜나가는 일본의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 영화계도 덩치만 키우고 정작 내실에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한 번쯤 재고해 봤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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